100세를 맞은 최고령 그랜드마스터 유리 아베르바흐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 그랜드마스터인 유리 아베르바흐(Yuri Averbakh)가 오늘 100세를 맞았습니다. 그는 지난여름에 걸린 코로나19에서 회복해서 컨디션을 되찾았고, 여전히 정신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 엔드게임을 분석한다고 말했습니다.
1922년 2월 8일 모스크바에서 남서쪽으로 180km 떨어진 칼루가에서 태어난 아베르바흐는 100세가 된 최초의 그랜드마스터입니다. 이전까지 최고령 그랜드마스터는 안도르 릴리엔탈(Andor Lilienthal)이었습니다. 릴리엔탈은 2010년에 99세가 된 지 3일 만에 작고했습니다.
아베르바흐의 100번째 생일을 맞아 체스닷컴에서 연락을 취했고, 그의 신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2021년 6월 코로나19에 걸린 이후 건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퇴원하고 한 달 동안 회복 센터에서 치료받을 것을 러시아 체스 연맹에서 제안했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괜찮습니다. 젊은 시절에서는 한참 지나왔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서는 한참 지나왔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베르바흐는 여전히 체스와 함께이지만 그 정도는 크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 동안 시력과 청력이 크게 저하되어 지금은 예전처럼 컴퓨터로 작업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동료들을 만나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공유합니다. 때로는 엔드게임 포지션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컴퓨터 시대에 이러한 분석이 실용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정신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때로는 엔드게임 포지션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컴퓨터 시대에 이러한 분석이 실용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런 활동들은 정신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00세의 그랜드마스터가 최근의 체스를 따라가기는 어려워졌지만, 그는 특별히 좋아하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앞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최근 경기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저는 현대 선수들 중에서 이안 네폼니아치(Ian Nepomniachtchi)를 항상 응원합니다. 네폼니아치가 월드 챔피언십 도전자로 결정되었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그는 월드 챔피언십 후반전에서 체력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재능이 더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습니다."
아베르바흐는 긴 생애 동안 체스 선수이자 그랜드마스터였습니다. 또한, 그는 저명한 체스 코치, 국제 아비터, 체스 문제 연구가, 엔드게임 이론가, 작가, 체스 역사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베르바흐 스스로는 자신의 최고 업적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감사합니다! 저는 일생을 체스에 바쳤고 이 위대한 게임의 다양한 면에서 스스로를 증명했습니다. 스스로 평하는 최고의 업적은 가장 근래에 내온 저의 책입니다. 저가 일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책을 위한 자료를 모으는 것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경기가 있는지도 물었습니다. "최근 계산해본 결과 저는 평생에 걸쳐 2,500번의 토너먼트 체스 경기를 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경기를 고르기는 어렵지만,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1940년(제가 착각하지 않았다면)에 세르게이 벨라베네츠(Sergey Belavenets)와의 경기를 꼽고 싶습니다. 그 경기는 제가 유명한 마스터이자 저의 친구를 상대로 기록한 첫 승리였습니다. 그는 저의 마음속에 엔드게임에 관한 취향과 체스 전략의 비밀에 대한 이해를 심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체스 역사가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1941년 10월 12일 열린 이 경기의 기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모스크바 토너먼트는 나치 군대가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 중단됐고, 경기의 기보는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기보를 발견한 독자가 있으시다면 제보 바랍니다.)
아베르바흐는 그의 생애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 중 한 명은 바실리 스미슬로프(Vasily Smyslov)였습니다. "나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매우 많이 만났습니다. 그중 한 명을 꼽자면 철학적인 사고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바실리 스미슬로프를 꼽고 싶군요.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세르게이 벨라베네츠도 높은 도덕 원칙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예감했고, 그것은 슬프게도 사실이 되었습니다."
"스미슬로프는 철학적인 사고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아베르바흐는 꽤 성공적인 체스 선수였습니다. 1944년 그는 소련 스포츠 마스터라는 칭호를 얻었고, 1952년 체스 그랜드마스터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랜드마스터의 총 수는 전 세계에서 35명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아베르바흐는 역사상 가장 강한 선수들이 참가했다고 여겨지는 1953년 취리히 도전자 결정전에 참가했습니다. 이 대회는 후에 데이비드 브론스타인와 미구엘 나이돌프가 책으로 다룬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53년 8월 30일부터 10월 23일까지 15명의 선수가 더블 라운드 로빈으로 겨룬 이 대회에서 스미슬로프가 우승하며 다음 해 세계 챔피언 미하일 보트비닉(Mikhail Botvinnik)에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아베르바흐는 13.5/30점을 기록하며 아이작 볼슬라브스키(Isaac Boleslavsky)와 함께 공동 10위에 올랐습니다.
도전자 결정전이 끝나고 1년 후, 아베르바흐는 소련 챔피언십을 14.5/19점으로 우승했습니다. 당시 대회에는 강한 그랜드마스터인 마크 타이마노프(Mark Taimanov), 빅토르 코르치노이(Viktor Korchnoi), 티그란 페트로시안(Tigran Petrosian), 에핌 겔러(Efil Geller), 살로 플로(Salo Flohr) 등이 있었습니다.
1958년 포르토로즈에서 열린 인터조날 토너먼트에서 그는 0.5점 차로 다음 도전자 결정전 진출에 실패합니다. 미하일 탈(Mikhail Tal), 스베토자르 글리코리치(Svetozar Gligoric), 페트로시안, 팔 벤코(Pal Benko), 프리드릭 올라프손(Fridrik Olafsson), 바비 피셔(Bobby Fischer)가 도전자 결정전으로 진출했고 탈이 우승하며 1960년 보트비닉에 도전했습니다.
아베르바흐는 젊었을 때부터 체스 저널리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스미슬로프와 보트비닉의 1954년 대결에서 해설자로 나섰습니다. 40세였던 1962년에 그는 프로 선수를 은퇴하고 저널리즘과 코칭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여러 체스 잡지의 편집자로 활동했습니다.
아베르바흐는 카르포프와 카스파로프가 처음 맞붙은 1984년 월드 챔피언십을 비롯해 1993년 카스파로프 vs 쇼트, 2000년 카스파로프 vs 크람닉 대회에서 수석 아비터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이전 인터뷰에서 장수의 비결을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87세가 되기 이전까지 그는 거의 매일 수영을 했고 그것이 건강의 비결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체스닷컴은 체스 커뮤니티를 대신하여 아베르바흐의 놀라운 삶에 건강과 행복이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